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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hur

Arthur Kinsler​

​유산과 영향

​아츠(Arthur) 킨슬러 선교사는 한국 교회의 예배 혁신자이자 산업선교의 실천가로, 동시에 교육자이자 한국과 세계를 잇는 국제적 다리로 기억된다. 그의 삶은 "평양은 나의 고향"이라는 고백처럼 한국 사회와 신앙 공동체에 깊은 흔적을 남겼으며, 그가 남긴 발자취는 단순한 개인의 생애를 넘어 한국 교회의 역사 속에 큰 의미로 새겨졌다. 그는 신앙과 헌신, 그리고 포용의 정신을 몸소 보여주었고, 그 정신은 오늘날에도 다음 세대에게 전해져 살아 있는 유산으로 남아 있다. 

​생애와 배경 (Biography)

  • 1934년 평양 출생, 유년기 평양에서 성장.

  • 일제 강점기, 태평양전쟁, 한국전쟁 격변 속에서 신앙적 정체성 형성.

  • 미국 유학: 휘튼대, 프리스턴 신학대학원, 하와이 주립대, 연세대 박사.

  • ​평화봉사단 디렉터로 귀국하여 산업선교, 예배 혁신과 해외 구호 활동.

  • 2011년 은퇴, 2024년 소천 -> 유언에 따라 한국에 안장 

History

​초기 선교 활동과 군목 사역

Early Ministry & Military Chaplaincy

1966년 평화봉사단 디렉터로 귀국, 한국에서 봉사 시작.

1969~1972년 미 제8군 군목으로 한국, 베트남, 루이지애나에서 사역.

1972년 미 남장로교 파송 선교사로 정식 활동 시작.

​미군 공동체와 샬롬하우스 

Shalom House & Hillside House

1972~1973 동두천 샬롬하우스에서 미군 선교와 생활 지원. 

1973~1978 한남동 힐사이드하우스 디렉터, 미군 제2사단 군인 상담 및 성경공부, 한국문화투어 지원.

​한국 주둔 미군을 위한 돌봄. 상담 사역을 통해 국제교회의 성장 기반 마련.

​산업선교와 사회 참여

Industrial Mission & Social Engagement

1979년 YH 사건 이후 한국 산업선교의 중심적 역할 수행.

순천.여수. 여천 등 공업도시에서 노동자 지원, 신앙공동체 형성.

여천제일교회 설립, 청소년과 노동자 대상 하우스처치와 장학. 성경공부 운영.

​산업화와 도시화로 어려움 겪는 농촌. 노동자 지원에 헌신 

​예배와 교회 갱신

Worship & Church Renewal

1980년대 한국교회 예배 개혁 주도.

영어예배 도입 -> 외국인과 청년 세대를 위한 새로운 예배 문화 확산.

1985년 온누리교회 경배와 찬양 예배 시작, 이후 한국 전역으로 확산.

​대형교회 성장과 한국교회의 새로운 부흥운동에 영향.

​교육 및 지도자 양성

Education & Leadership

연세대. 숭실대. 장신대에서 교수로 강의, 신학. 선교학 교육.
1990년 연세기독학생모임(YICF) 설립, 외국인 유학생과 청년 리더십 양성.
2004~ 2014년 연세대 세계기독교센터(Yonsei Global Service)에서 활동. 

​사회봉사와 장애인 사역

Service & Disability Mission

1981~2015년 성경구락부 이사장으로 한국 성경구락부 활동 주도.
2004~2012년 북한 장애 아동 지원 사업 운영.
대한기독교서회, 한국선교회 이사 역임.
​북한과 해외 구호사업에도 적극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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